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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복식-중세초기의 복식[5~9C 암흑시대]

앵쥬 2020. 7. 5. 23:21

중세복식 - 중세 초기의 복식 역사 [5~9세기 암흑시대(Dark age)]


서로마가 멸망한 5세기(476년) 후반부터 15세기(1453년) 르네상스 시대 이전까지 약 1000여 년간을 중세라고 합니다.

중세는 시대적으로 3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1. 중세초기 (5~9세기), 암흑시대(Dark age)

2. 중세중기 (10~12세기), 로마네스크 시대(Romanesque age)

3. 중세말기 (13~15세기), 고딕 시대(Gothic age)


■ 중세 초기


1. 사회 문화적 배경

  • 중세 초기는 게르만 민족이 유럽을 장악함으로써 오늘날의 유럽이 지리적 · 역사적 · 민족적으로 성립된 기간이다.
  • 혼란과 통일, 다시 분열이라는 악순환을 거듭하던 시기로 사회제도나 문화의 발달이 다른 시대에 비해 적어서 암흑시대라고도 한다.
  • 훈족의 서고트족 공격과 침입은 로마제국의 동서분열과 멸망을 가져왔으며, 게르만 민족의 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 훈족이 게르만족에 의해서 다시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로 이동한 이후(455년)부터 중세 게르만족은 로마제국이 지배했던 영토에 각기 왕국을 건설하여 중세사회를 형성했다.

10세기 유럽의 왕족들




2. 복식의 유형

① 튜닉(tunic)

남자 튜닉: 몸에 맞는 형태, 넓적다리까지 오는 길이에 바지를 함께 입었다.
여자 튜닉: 몸에 맞는 형태, 발목까지 길이 튜닉에 끈을 매지 않고 입었으며 벨트를 매기도 했다.

지위에 따라 평범한 모직물부터 실크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상류층은 튜닉의 앞 중심선과 목둘레, 아랫단에 선 장식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튜닉의 소매는 반소매 또는 긴소매에 팔꿈치 아래로 넓어지는 형태도 있었고, 손목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스커트 아랫단은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이다.


튜닉 안에는 긴소매에 손목이 잘 맞는 형태의 언더 튜닉을 착용했다.  겉 튜닉보다 길이가 짧다.
언더 튜닉 소재는 리넨, 실크, 나사 등이 많이 쓰였고 후기로 갈수록 실크의 사용이 많았다.
아래도련을 풀어 술 장식을 하기도 했다.  추운 날씨에는 어러 벌 겹쳐 있거나 모피를 안에 넣어입거나 가장자리에 모피를 달았다.
튜닉의 소재는 주로 모직물을 사용했고 흰색, 빨강, 초록, 자색 등의 색상에 선 장식, 줄무늬, 체크무늬 등이 있었다.


10세기 오토 3세




② 바지
부드럽고 여유있는 긴 바지였다가 점점 바지 통이 좁아졌다.
7~9세기의 튜닉이 무릎 위의 길이로 짧아지면서 바지 길이도 튜닉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대신 호즈가 길어지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바지는 다리에 밀착되는 형과 품이 넓은 형태의 페이즌이 있었는데, 보통 발목길이로 추울 때에는 끈으로 허벅지까지 X자형으로 묶었다.
허리는 가죽끈이나 실을 꼬아 만든 끈으로 조여 입고, 무릎길이의 바지는 발목에서 무릎까지 끈으로 감아서 다리를 보호했다.

③ 블라우스
소매가 팔꿈치까지 오는 길이이다.
둥근 목둘레에 장식선이 있으면서 약 7cm정도의 트임이 있다.
언더 블라우스 형태이며, 가장자리에는 술 장식이 있거나 올이 풀리지 않도록 자수나 선장식 처리가 된 것도 있다.

④ 콜로비움
남자들의 소매없는 튜닉의 변형이다.
앞중심이 트여있어가 막혀 있는 엉덩이길이의 조끼 형태로, 털이 안으로 오도록 입었다.

⑤ 외투
털가죽, 펠트직, 체크무늬의 모직물로 만들었다.
숄을 두르듯이 천을 반으로 접어 어깨에 걸쳐 입거나 사굼과 같이 사각형의 천을 어깨에 둘러 한쪽 어깨나 앞중심에서 여몄다.
반원형의 케이프는 목덜미 부분의 천 가장자리를 말아올려서 칼라의 형태를 보이기도 했다.

⑥ 맨틀
케이프 형태로 청색이나 회색의 장방형, 반원형, 원형의 모직물을 어깨에 걸쳐 목이나 가슴부분에서 브로치나 핀으로 고정시키거나 끈으로 묶어 입었다.
로마시대의 팔라, 팔리움, 사굼 등은 그대로 존속되고 후기로 갈수록 얇은 모직물, 실크 등으로 대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