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복식] 중세 중기의 로마네스크 복식(10~12세기)
로마네스크(Romanesque)
1. 사회문화적 배경
- 로마네스크는 중세초기의 혼란기를 벗어나 통일과 안정을 되찾은 시기이다.
- 비잔틴 문화가 융성하는 동안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속에서 유럽은 암흑시대를 거쳐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독일 등의 국가로 분리됐다.
-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인에 의해 점령되어 비잔틴제국이 멸망하는 사이의 유럽은 게르만 민족의 이동, 프랑크 왕국의 건국과 분열, 노르만인의 침입과 건국, 십자군 원정 등 유럽과 동방과의 교류가 현저하게 나타났다.
- 정치적 안정이 11세기경 이루어졌고, 서유럽 사람들은 문화의 부흥에 노력하고 그 범주를 동로마제국에서 구했다.
- 따라서 게르만적 요소와 고대 로마, 비잔틴 문화가 융합되어 중세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 정치적 혼란기를 지나 엄격한 신분제를 가진 봉건체제가 성립되었다.
- 11세기에 기독교가 전 유럽의 시대정신으로 부각되면서 중세문화를 지배했다.
- 로마네스크는 크리스트교 정신이 들어간 예술의 신양식으로 우선 종교건축에서 나타났다.
- 12세기 중엽부터는 전체적으로 완전한 로마네스크 복식 스타일이 나타났다.
- 십자군의 영향으로 상공업의 발달이 촉진되어 서유럽 각지에서 모직물 산업이 융성해졌다.
- 12세기 중엽부터는 봉제부분에도 영향을 미쳐서 보다 세련되고 기교적인 의복이 나타나며 진보했다.
- 십자군의 원정으로 서구는 동방문화를 받아들였는데, 특히 견직물의 수입과 소비가 증대되었다.
- 이때부터 의복 형태가 복잡해지고 색채가 풍부해졌고, 여자복식에서 특히 두드러져서 남녀복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 동방의 아름다운 견직물, 면직물의 수입과 직조기술의 발전으로 복식이 양과 질 양면에서 향상된 시기이다.
- 로마네스크 양식은 고대 로마 스타일의 부활 + 로마 가톨릭의 영향 + 중세유럽 고유의 미 + 비잔틴의 동방요소의 영향 등을 배경으로 형성되었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으로 여러 요소가 융합된 독특한 의복 스타일을 표현했다.
2. 복식의 유형
- 로마네스크 복식은 신체를 모두 가렸던 비잔틴 복식과 달리 상하로 분리되어 몸에 맞는 실루엣으로, 흐르는 듯한 유려한 인체미를 나타낸 것이 특징이다.
- 사회배경적인 측면과는 다르게 의복은 점차 우아하고 흐르는 듯한 라인이 발달했다.
- 남방과 북방계통이 혼합된 형태의 복식이 나타났고, 십자군 원정으로 수입된 동방문물이 혼합된 독특한 경향을 나타냈다.
- 남녀의 복식에 점차 분리가 되어가는 시기였다.
- 복식의 일반적인 형태는 흰색 리넨의 쉥즈(chainse) 위에 블리오(bliaud)를 입고 맨틀(mantle)을 걸쳤다.
- 중세의 봉건제도로 보석이나 의복이 신분을 나타내는 역할을 했다.
로마네스크 의복 _ 블리오, 튜닉, 쉥즈, 코르사지, 꼬뜨
① 블리오(bliaud)
- 달마티카와 튜닉이 변형된 의복이다.
- 11세기 남녀의 의복으로 이오닉 키톤의 부드러운 주름과 달마티카의 장식성이 조화되었다.
- 상체가 꽉 끼고 소매가 길면서 소매부리로 갈수록 넓어지고, 스커트는 길고 넓어서 주름이 많이 잡힌다.
- 귀족들의 블리오는 목둘레에 선 장식이 있고 뒤에서 끈이나 단추로 여며 입었으며 후기로 갈수록 소매부리가 넓어져서 뒤에 끌릴정도의 변화가 있었다.
- 남자들은 무릎길이와 발목길이이고 바지와 착용했으며 블리오 허리에 벨트를 해서 아름다운 주름이 만들어졌다.
- 여자들은 긴 길이로 남자 블리오와 형태는 같으나 상체가 더 타이트해서 곡선미가 있었고, 아래로 갈수록 크고 넓어져서 주름이 많이 생기게 했다.
- 소매부리도 스커트와 조화되도록 폭이 넓었다.
- 위에 코르사지를 입거나 넓은 장방형 천으로 허리를 강조하기도 했다.
- 실크나 머슬린을 주로 사용했다.
- 블리오 속에는 쉥즈를 입고 위에는 맨틀을 걸쳤다.
- 블리오는 상하를 분리 재단하여 상체는 꼭 맞고 하체는 길고 폭넓은 튜닉으로 허리에 넓은 천을 감아 허리선을 강조하기도 했다.
② 튜닉(tunic)
- 블리오 대신 서민계층에서 입었다.
- 대부분이 무릎길이로 허리에 벨트를 매어 입었다.
- 남자들은 아래 호즈나 브레와 함께 입었다.
- 언더 튜닉은 소매가 꽉 끼고 블리오의 소매 사이로 보이므로, 목둘레와 소매부리에 자수 장식이나 선 장식이 있다.
③ 쉥즈(chainse)
- 언더튜닉의 다른 이름으로 블리오 아래에 입었다.
- 리넨이나 얇은 모직물로 만들었다.
- 소매가 좁고 소매부리와 목둘레에 자수가 놓인 선 장식이 있다.
- 남자는 무릎길이, 여자는 발목길이이며 형태는 같다.
- 13세기부터는 슈미즈(shemise)라고 불렀다. (언더튜닉 → 쉥즈 → 슈미즈)
④ 코르사지(corsage)
- 여자들이 블리오 위에 착용한 조끼형의 의복이다.
- 허리 주변의 단은 곡선형이고 가죽이나 천 끈으로 허리를 매어 고정했다.
- 2~3장의 천을 겹쳐 바느질했고, 금은사 자수 외에 보석 장식 등을 했다.
- 실크와 모직물의 직물로 얇은 천을 사용했다.
- 스모킹을 하여 신축성을 주었다.
⑤ 꼬뜨(cotte)
- 12세기 상류층만 입던 블리오가 13세기에 단순한 형태의 꼬뜨로 대체되며 널리 입혀졌다.
- 꼭 맞는 상체에 스커트 아래로 내려갈수록 넓어지면서 약간의 주름이 만들어진다.
- 발등을 덮는 긴 길이이고, 여자는 더 길었다.
- 타이트 슬리브 또는 돌만 슬리브 형태이며, 목둘레는 둥글게 파였다.
- 모직물이 주로 사용되었고, 실크, 금사직도 사용했다.
- 허리 아래에 거들을 매어 늘어뜨려 착용했다.
⑥ 헤어와 악세사리
- 상류층에서는 머리에 꼭 맞는 캡 형태로 턱 밑에서 끈으로 매어 쓰는 코이프가 유행했다.
- 그 외에 라운드 캡, 베레모, 밀짚모자 등을 썼다.
- 여자들은 친밴드(chinband)를 한 후, 그 위에 필 박스형의 모자를 착용했다.
- 12세기부터 앞부분이 뾰족하면서 길어지는 크렉코우(crackow)라는 신발을 신었다
- 크렉코우는 가죽이나 실크 등에 보석과 자수 장식을 했다.
- 크렉코우를 보호하기 위해 나막신인 패튼을 함께 신었다.
- 주머니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 것이 중세기 동안 남녀 모두에게 유행했다. (십자군 원정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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